유대교에서 죄를 지어 이승에 남게 되는 영혼에 관한
믿음은 수천년간의 집단신념이였다.
1800년대에 와서 동유럽 사회에서 살아 나기위해 변화 되었을뿐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윤회나 환생은 유대교에 뿌리 깊은 신앙적 신념이였고
지금도 정통파 유대교와 하시디즘 교파에서는 믿고 있으며
수천년 유대교의 비전인 카발라는 전생이나 환생에 대한 내용이 많고
개별 영혼이 다른 육체를 입고 여러번 환생 할 수 있다고 본다.
인도의 주된 종교이며, 가장 오래된 세계 종교이다.
힌두교는 환생의 교의에 기초하고 있고 많은
신이 심지어 인간 세상에 환생해서 온다고
믿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봐타라는 단어가 그러하다.
신이 인간의 몸을 빌려 온것이 아봐타인것이다.
그정도로 흰두교는 환생과 전생에 기반한 종교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윤회’란 산스크리트로 ‘삼사라’라고 하는데
전생(轉生), 재생(再生), 유전(流轉)의 의미를 지닌다.
B.C. 600년경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이 윤회 사상이 현재의 힌두교에까지 이어지며
보편적인 인도인의 진단신념체계가 된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이 지닌 사유체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몸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고 믿었으며
정신적인 의식의 요소만이 업과 인연에 따라 윤회를 한다고 보았다.
신약에 들어 있던 윤회 전생에 대한 내용을 AD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삭제해버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제국을 다스리는 입장에서는 황제의 권력과 제국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 다시 기회가 있고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산다는 것은 최후에 심판일을 맞아 한 번의 생에 대한 판결,
국민들은 순종적일 수 밖에 없게 될것이다.
6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인 교회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교회나 국가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순종적이고 교리적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의지를 약화시킨다고 보아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을 바꾸거나 변경하지 않았지만
초기 영지주의 기독교나, 그노시스주의,
12세기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의 카타르파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핍박과 무서운 처벌이 가해짐에도 불구하고
전생과 환생에 대한 믿음은 오랫도록 유지되기도 했다.
도가는 우리에게 많은 전생의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친근한
우리문화에 녹아있는 요소다.
원불교는 원불교 경전에서 원불교를 창시한 대종사가
전생에 관한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일본의 민간 신앙등은 전생이 상식이고 만불에 영혼이 있다고 본다.
전 세계 많은 문화에서 종교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혼이 다시 태어나고 이전의 생인 전생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전생을 체험하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의식을
오래전부터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체험 의식은 이 번생 이전의 생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치유 평화 황홀의식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심리치유 기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